"백 년을 살아보고 나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는 60세에서 75세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동영상에서 안경을 쓴 철학과 교수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일상을 정신없이 보내면서 만족감이 떨어지던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크게 위안이 되는 메시지였습니다.
주인공은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로 딱 100세가 되던 2019년도에 모 방송사의 '인간극장'이라는 신년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시면서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졌고, 그즈음 우연히 동영상을 보고 나서는 김형석 교수님이 쓴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까지 찾아서 읽게 됐습니다.
100세가 되어서도 꼿꼿하게 서서 강의를 하는 모습, 병으로 아내를 떠나보내고 수영과 걷기를 하고 아침 식사를 가볍게 하는 모습, 친한 동료들과 다복한 가족들과의 만남 등 100세 철학자 교수의 일상에 눈길이 갔습니다. 방송은 아무래도 제자 분들이 주축이 돼서 헌정 프로그램처럼 만들어진 것 같았으나, 어느 때보다 정신없이 다양한 가치관이 충돌하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단순한 다큐멘터리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의 책을 읽고는 친한 친구들과 만났을 때 "인생의 황금기는 우리가 팔팔하게 일하는 젊을 때가 아니라, 60~70대라고 말하시는 분이 있으니까 너희도 한번 책을 읽어보라"면서 전에 없던 오지랖을 부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 친구들도 당시 각자의 삶에 바빠서 '나, 아주 괜찮게 살고 있어'라는 표정의 친구들은 많지 않았고 걱정들만 한 덩어리 머리 위에 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1.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조급할 필요 없다
<백년을 살아보니>는 김형석 교수님이 97세이던 2016년에 처음 집필한 책이고, 아마도 100세가 되는 2019년에 표지 디자인과 서문에 변화를 줘서 30쇄를 찍은 것으로 보입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연세대에서 65세에 정년 퇴임을 하고 일을 안 할 줄 알았는데 그 뒤로도 만 31년을 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중앙중, 고등학교와 연세대에서 40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고, 퇴임 후 31년을 일했으니까 총 71년을 일한 셈입니다. 스스로도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할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매일 원고도 쓰고 1주일에 한두 번은 지금도 왕성하게 강연을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김형석 교수님은 "지나고 나서 보니까 내가 살아온 인생을 평가받고 쌓아온 인간관계도 그렇고 스스로 '내 인생이 괜찮았구나'라고 만족스러웠던 때는 60에서 75세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해오던 일이니까 계속하고 있을 뿐이라는 설명입니다. 교수님은 "지금도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이 많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75세까지는 나름대로 공부하면서 일했기 때문에 창의적인 성장을 했다고 보며, 그 후부터는 창의적 성장은 새롭게 되지 않았을지라도 수준은 유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일찍 사회적 성공을 했다는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은 뒤처진 것 같아서 자괴감이나 자책을 느끼기가 쉽습니다.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으니까 젊었을 때는 자책하거나 좌절감을 느끼기가 쉽습니다. 저도 예전에 쓴 일기들을 보면 기쁜 이야기보다는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게 쓴 내용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2. 사랑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
김형석 교수님은 100세를 살면서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알기 까지 90년이 걸렸다'라고 합니다.
평안남도에서 자라서 친어머니가 스무 살까지만 살아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병약했던 김형석 교수님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을 겪은 세대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탈북해 실향민이 되었고 결혼 후 두 동생과 여섯 명의 자식까지 총 8명의 생활을 이끌어야 했기 때문에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자신과 아내는 갖은 고생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20년 동안 병중이었던 아내는 교수님이 84세 때 먼저 세상을 떠나 홀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최근에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 있는 딸들과 만난 자리에서 "엄마는 힘든 데 왜 우리를 여섯 명이나 낳아서 고생하셨을까...아버지도 그렇고..."라고 사랑과 탄식이 섞인 질문에 대해서 "그래도 그 때가 제일 행복했다. 엄마도 또 같은 고생을 하기 위해서 다시 오라면 서슴지 않고 웃으면서 올 것이다"라고 답변한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그 고생 속에는 사랑이 있었거든. 너희들도 인생을 살아보면 사랑이 있는 고생이 가장 값진 행복한 인생인 것을 깨달을 거야. 엄마는 이미 그 인생을 끝낸 것이고"라고 말하면서 딸들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3. 철학자다운 인생의 통찰과 에피소드들
<백 년을 살아보니>에는 왕성한 사회활동을 마치고 80세 이후에 다양한 노년을 삶을 사는 지인분들의 이야기, 교수님이 직접 겪었던 에피소드들이 하나씩 소개되고 여기에 직접적인 평가나 판단은 하지 않지만 독자들이 직접 어떠한 인사이트를 얻어 가도록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일, 결혼, 교육, 황혼기의 이혼과 재혼, 죽음, 종교, 노년의 삶에서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시는데 '똑같은 행복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2011년에 한림대에서 일송상을 받았을 때 "오래 사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의미로 상을 주신다면 받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고 마음의 위로를 받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히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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