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 서가에서 딱 3권 있는 하루키 책 중에 하나일 정도로 지금까지 여러 번 같은 책을 사서 읽을 만큼 애정 하는 책입니다.
파란색 야구 모자와 파란색 러닝 반바지를 입은 채 근육질 몸으로 뛰고 있는 하루키의 뒷모습, 등골이 직선으로 갈라진채 곧은 자세로 뛰고 있는 하루키의 사진이 한가운데 실린 책 표지는 그의 문학세계만큼이나 단단하고 깊어 보입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루틴을 좀더 알게 된다는 것은 큰 행운이고, 가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하루키의 책상을 찍은 사진이나, 부부 사진이 나오면 캡처해 놓곤 합니다. 도쿄에 갔을 때는 하루키 책에 등장하는 러닝 코스를 우연히 지나갔을 때는 '아, 여기가 하루키가 말했던 그 코스구나. 러닝 코스 치고는 상당히 아름답다'라는 혼자만의 상상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야구광으로 야구를 보다가 소설가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 하루키, 젊은 시절에 재즈 클럽을 운영했던 경험으로 여러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고 음식 만드는 것도 즐기는 하루키, 해외에 오래 머물면서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고 음악을 듣고 간단히 요리를 하는 심플한 일상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의 사고방식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1. 정직한 회고록을 쓰는 심정으로
사실 하루키는 56세인 2005년에 조금씩 달리기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해서 2006년에 탈고를 해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출간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달리기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은 10년 넘게 하고 있었지만, 너무 막연했기 때문에 글을 쓰기가 어려웠는데 그냥 자신이 '지금 느끼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써보자'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키는 책에서 '달리기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직하게 쓰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면서 자신이 전업 작가가 된 이후 계속 달리기를 하고 있는 만큼 철학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이 인생을 살면서 알게 된 경험칙이 녹아있는 회고록으로 봐 달라고 당부합니다.
외동으로 태어난 하루키는 팀으로 하는 스포츠는 적성에 맞지 않았고, 혼자 장거리를 달리는 게 자신에게는 맞았고 달리기를 하는 동안 즐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1982년 가을에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에 23년(책을 쓰던 2005년 기준) 가까이 달렸고, 마라톤 풀코스도 23번이나 완주했다고 합니다.
하루키는 마라톤 풀코스 완주 시간이 3시간 30분~40분을 기록하다가 40대 후반이 되면서 4시간에 가까워지면서 싫증이 나기 시작해서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하루키는 이것을 '러너스 블루'였다고 말합니다. 다시 2005년에 보스턴 마라톤 개최지인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대학 강사직을 맡아서 돌아오면서 달리기를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소개합니다.
2. 인생에는 우선순위가 필요하다는 것
서른 세살이던 1982년에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하루키는 자신이 맨 처음 직면한 어려움은 바로 체력이었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다 보니까 체력이 떨어지고 체중은 불어났고 하루에 60개비 담배를 피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이때가 <양을 쫓는 모험>을 쓰고 난 직후였다고 합니다.
하루키가 말하는 '착실하게 진지하게 달리기'의 기준은 일주일에 60km를 달리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7일 동안 매일 10km를 달리고 싶지만 날씨 영향도 있고 일이 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0km는 하루키의 조깅 페이스로는 1시간을 달리는 거리라고 합니다.
하루키는 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는 재즈 클럽을 운영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하루키 표현으로는 '열린 생활에서 닫힌 생활로 크게 방향을 선회했다'입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으면서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밤 10시에 잠드는 심플한 삶으로 돌아갔고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한 인간관계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블특정 다수인 독자와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독자의 얼굴은 직접 볼 수 없고 그것은 어찌 보면 '관념적인 인간관계'이나 하루키 자신은 일관되게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독자와의 '관념적 인간관계'를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정해서 인생을 보내왔다고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습니다.
하루키이 글 중에서 인상적인 메시지는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이를 확립하지 않으면 인생은 뒤죽박죽이 돼 버린다'였습니다.
3. 당신은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하루키의 달리기에 관한 내용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도 자세하게 등장하는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앞서서 출간한 책으로 보시면 됩니다.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다'라는 유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작가들 중에서는 하루키의 달리기처럼 글을 쓰고 나면 자신만의 일상적인 루틴을 갖고 있는 유명 작가들이 꽤 있습니다.
어니스트 해밍웨이는 오전 글쓰기가 끝나면 오후에 수영을 거르지 않았고, 복싱을 좋아해서 50대까지 프로급 선수와 스파링을 즐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굴곡진 삶을 지낸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는 마흔이 넘어서 수채화를 그리고 정원을 가꾸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작가들은 몸을 사용하는 것과 창의적인 두뇌활동과 연관이 많이 있어 보입니다.
꼭 작가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루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하는 게 좋아보여서, 대단해 보여서가 아니라 하루키처럼 자신의 기질이나 성격에 맞으면서 '하루씩 꾸준하게' 지속할 수 있는 루틴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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